예전엔 예쁜 걸 찾았어요. 무드보드를 만들고, 레퍼런스를 모으고, 완성된 공간을 머릿속에 그렸어요. 그런데 막상 그 공간에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건 내가 사는 공간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었던 공간인 것 같다고.
그때부터 질문이 바뀌어요. 예쁜가가 아니라, 나와 맞는가. 트렌디한가가 아니라, 오래 함께할 수 있는가. 완성된 형태인가가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을 담을 수 있는가.
가구를 사는 게 아니라, 공간과의 관계를 고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번 호는 그 질문에 대한 이야기예요.
A. 사람
샬롯 페리앙이 먼저 물은 것
샬롯 페리앙(1903–1999)은 현대적인 삶을 위한 건축과 그 공간 안에 배치된 가구들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 디자이너예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이야기예요.
스물한 살에 르 코르뷔지에의 스튜디오 문을 두드렸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여기서 쿠션을 만들지 않아요." 거절이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같은 해 살롱 도톤에 자신의 작업을 직접 전시했고, 르 코르뷔지에는 생각을 바꿨어요.
그렇게 시작된 협업에서 페리앙이 늘 먼저 물은 건 하나였어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녀는 설계를 시작하기 전에 실제로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했어요. 어떤 자세로 앉는지,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지, 공간 안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공간과 가구가 아름다운 장식품이 아니라는 메시지, 그게 그녀가 디자인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어요.
1967년부터 20년 이상 진행한 레작 스키리조트 프로젝트에서는 건축에서부터 작은 가구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직접 이끌었어요. 리조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쉬고,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혼자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가구를 만들었어요.
사람을 먼저 보고, 공간을 설계하고, 그 다음에 가구를 놓는 것. 페리앙에게 가구는 공간을 채우는 물건이 아니었어요. 사람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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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가구
가구관계를 만드는 가구들
가구 하나가 공간의 관계를 바꾸기도 해요.
식탁이 대표적이에요. 직사각형 식탁에서는 자연스럽게 상석이 생겨요. 누가 어디 앉는지가 관계를 드러내요. 그런데 원형 식탁에는 상석이 없어요. 앉은 사람 모두가 같은 거리에 있어요. 가구의 형태가 사람 사이의 구조를 바꾸는 거예요.
소파 배치도 그래요. 소파 두 개가 마주 보면 대화하는 공간이 돼요. 같은 방향을 향하면 함께 무언가를 보는 공간이 되고요. 가구를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그 공간에서 어떤 관계가 만들어질지가 달라져요.
이 생각을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디자인에 적용한 건 1950~60년대 스칸디나비아 디자이너들이었어요. 당시 북유럽은 전후 복구와 함께 작은 아파트에 여럿이 모여 사는 구조가 보편화되고 있었어요. 공간은 좁은데 함께 있어야 하는 시간은 많아지는 상황이었어요. 그 안에서 어떻게 각자의 자리를 갖고,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을지가 디자인의 과제가 됐어요.
선반 하나가 방 두 개의 경계를 만들고, 낮은 파티션이 시선은 차단하되 연결은 유지하는 방식. 벽을 세우는 대신 가구로 관계를 설계하는 거예요.
그 이후로 가구가 묻는 질문이 하나 추가됐어요.
이 가구 안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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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공간
공간관계가 달라질 때 공간도 달라진다
혼자 쓰던 서재가 둘의 공간이 되기도 해요. 같이 쓰던 거실이 각자의 공간으로 나뉘기도 하고요. 아이가 생기고,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누군가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공간이 요구하는 것들이 달라져요.
공간이 달라지는 건 대부분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패치 월 시스템은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있어요. 혼자 쓰던 서재 벽이 둘이 함께 쓰는 수납 공간이 되고, 책상 옆에 붙였던 선반이 어느 날은 물건을 올려두는 디스플레이 공간이 되기도 해요. 공간을 쓰는 방식이 달라지면, 모듈 구성을 바꾸면 돼요. 벽을 허물거나 새로 짓는 게 아니라요.
샬롯 페리앙이 가구를 만들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했던 것처럼, 오르막하우스도 같은 질문에서 시작해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 답은 사람마다 달라요. 그래서 오르막하우스는 완성된 형태를 제안하지 않아요. 누구든 자기 방식대로 구성할 수 있는 구조만 만들어요.